[서화동 칼럼] 사이비(似而非)에 속지 않는 법

입력 2023-04-04 18:01   수정 2023-04-05 00:23

“하나님이 안 보인다고? 나 쳐다봐. 하나님까지 볼 필요가 없어.” “내가 누군지 아느냐. 내가 메시아다.”

지난달 초 넷플릭스로 공개된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신이 배신한 사람들’ 1화에서 정명석 기독교복음선교회(JMS) 총재는 이렇게 주장한다. 몇 마디만 들어봐도 사기성이 농후한데 신자들은 열광한다. 그가 손을 대면 암이 낫고, 다리를 절던 사람이 정상적으로 걷는다고 주장한다. 재림한 메시아라는 그의 말을 믿고 “정명석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라고 한다. 젊은 여성들은 성폭력이나 성착취를 당하면서도 ‘정명석의 몸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것’이라고 믿는다. 신자 중에는 고학력에 번듯한 직업을 가진 이들도 많은데 어떻게 이런 가스라이팅이 가능할까 싶다. 선정성 논란이 있긴 했지만 이 다큐멘터리 덕분에 이단(異端)·사이비(似而非) 종교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어난 건 분명하다.

이단은 한자로 다를 이(異)·끝 단(端), 즉 ‘끝이 다르다’는 뜻이다. 시작은 같으나 교리 등에 대한 견해차로 정통학파나 종파와는 다른 길을 가게 된 집단이다. 이단을 뜻하는 영어 ‘heresy’의 어원인 고대 그리스어 ‘hairesis(하이레시스)’는 선택 또는 선택된 의견을 뜻했을 뿐 부정적 의미는 내포하지 않았다고 한다. 다신교 사회에서는 ‘다른 의견’이나 ‘다른 신’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유일신교에서는 달랐다. 바울은 ‘거짓된 가르침’이란 의미로 하이레시스를 처음 사용했고, 뒤이은 초대 교부들도 이를 부정적 의미의 분쟁, 분파라는 뜻으로 사용함으로써 이단의 개념이 더욱 적대적·배타적으로 변했다. 지금도 기독교에서 유독 이단 논쟁이 많은 이유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이단과 정통(orthodox)은 상대적이다. 내가 이단으로 규정한 상대방 입장에서는 내가 이단이 된다. 기독교도 처음에는 유대교에 대해 이단이었다.

이단과 한 묶음으로 자주 통용되지만 사이비는 전혀 다른 뜻이다. 진짜와 닮았지만 진짜가 아닌 것이 사이비다. 종교의 탈을 쓰고 있지만 위로와 평안을 주는 게 아니라 금품 강요, 갈취, 사기, 폭력, 성폭력 등으로 개인과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게 사이비 종교다. 이단은 종교의 범주에 속하지만 사이비는 종교가 아니라 범죄집단이다. 기독교계에서 이단과 사이비를 한 묶음으로 보는 것은 이단으로 시작해 사이비로 끝나는 경우가 많아서다.

사이비 종교의 교주는 신의 대리인이거나 메시아, 생불(生佛)을 자처한다. 교주의 카리스마로 신도를 세뇌하고 폭력, 금품 갈취 등을 당하면서도 그 피해를 인식하지 못하게 가스라이팅을 반복한다. 거기에 속지 않으려면 스스로 의심하고 질문해야 한다.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갈 거라고 협박하고 가정과 세상을 떠난 공동생활을 강요하는가. 신앙에 반대하는 배우자와 이혼을 종용하는가. 교주와 지도자가 신이나 메시아라고 자처하면 가능성 100%다. 여성과 미성년자에 대한 성적 착취, 금품 강요 및 갈취도 마찬가지다. 맹신과 맹종을 강요하고 탈퇴가 자유롭지 않다면 더 의심할 것도 없다.

사이비는 종교에만 있는 게 아니다. 금품을 강요하는 사이비 기자도 있고 학문보다 명리를 탐하는 사이비 교수, 국익보다 정파 이익을 앞세우는 사이비 정치인도 적지 않다. 민의를 대변하기는커녕 자기 집단의 이익만 강요하는 의원들이 대표적이다. 말로는 농민을 위한다면서 농업구조 개혁을 가로막고 예산만 낭비할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밀어붙이고 ‘방사능 밥상’ 운운하며 팩트도 없이 ‘후쿠시마 괴담’을 퍼뜨리는 야당 의원들, 숱한 이단 논란과 거친 언사에도 보수우파 세력을 이끌고 있다는 이유로 전광훈 목사를 옹호하는 여당 의원들을 보면서 “이분들이 진짜일까” 하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유일신교가 이단을 정죄하듯 자신들과 의견이 다르면 친일파로 몰고 죽창가를 불러대는 아집과 선동은 또 어떤가. 현실적 위험으로 다가온 북한의 핵 개발과 미사일 위협에는 입을 다문 채 대일관계 정상화를 위한 강제징용 배상 해법을 굴욕 외교, 계묘늑약, 외교 참사로 몰아붙이는 건 또 어떻게 봐야 할까. 신냉전의 국제질서 속에서 북·중·러 연대에 맞서기 위한 한·미·일 경제·안보 협력이 필요하지 않다는 말인가. 제주 4·3사건에서 토벌대의 과잉 진압만 이야기하고 북한과 남로당의 역할을 말하면 ‘극우’로 몰아붙이는 건 이단 정죄와 뭐가 다른가. 사이비에 속지 않으려면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대신 눈 부릅뜨고 옥석을 가리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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